
마음에 꼭 맞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드디어 '잃어버린 반쪽을 찾았다'라고 표현한다.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는 반쪽을 보완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의미일게다. 세포의 세계에서도 그런 반쪽이들이 존재한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둘이 만나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엄청난 역할을 하는 세포들이 바로 생식을 담당하고 있는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들이다. 오늘은 그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생식세포 중 하나인 정자에 대해 알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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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우엔훅이 남긴 정자의 스케치 1~4번은 토끼, 5~8번은 개의 정자이다.(좌),
레이우엔훅의 현미경의 복제품 <출처: (cc) Jacopo Werther>(우)
정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다 1679년의 어느 날, 중년의 남자는 그 날도 자신이 직접 만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스케치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레벤후크, 1632~1723). 그는 현미경과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현미경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들을 관찰한 그였지만, 이런 형태의 생물은 처음이었다. 작은 올챙이처럼 생긴 개체들은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뒤엉켜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것들이 정액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최초로 생식세포의 하나인 ‘정자(精子, sperm)’를 발견한 것이었다.
전성설의 등장, 정자 속에 작은 인간이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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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이 작은 세포가 정액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생명의 기원이 되는 세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정자의 머리 안에 ‘작은 인간’, 즉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숨어 있다고 믿기까지 했다. 정자론자들의 전성설이 제시된 것이다. 전성설(preformation theory)이란 하나의 생식세포 안에 장차 완전한 개체로 자라날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 정자 혹은 난자 안에 장차 사람으로 자라날 작은 개체들이 축소되어 들어 있을 것으로 여긴 생각을 말한다.
정자 속에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다고 믿은 정자론자들과 난자 속에 들어 있다고 믿은 난자론자들로 나뉠 수 있지만 하나의 생식세포 안에 인간의 모든 기원이 들어 있다고 믿은 것은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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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속에 작은 인간이 들어있는 모습의 스케치.
Nicolas Hartsoeker(1656-1725)의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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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설의 오류- 러시아 인형 패러독스 전성설은 일견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가진다. 하나는 인간의 기원이 정자 혹은 난자에서만 비롯된다면 아이가 반드시 한 쪽의 부모만을 닮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양친의 특성을 모두 물려받아 태어난다. 또 하나, 정자 혹은 난자 속에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다면 이는 곧 ‘러시아 인형 패러독스(Paradox of Russian doll)'이 생겨나게 된다.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Matryoshka)는 달걀 모양의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겹겹이 들어있는 형태인데, 제작자의 솜씨에 따라서 겹쳐지는 인형의 개수는 수십개에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아무리 귀신같은 솜씨를 지닌 장인이라 할지라도 내부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인형의 개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정자 혹은 난자 속에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다면 이 작은 호문쿨루스의 생식기 안에 든 생식세포 안에는 다시 그보다 더 작은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을 것이고, 이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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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 인형. 전성설은 러시아 인형 패러독스로 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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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정자 안에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미 현미경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작은 정자 안에 든 호문쿨루스의 정자는 얼마나 작을 것이며, 그 작디 작은 정자 속에 또 호문쿨루스는 또 얼마나 미세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태가 반복된다면, 아무리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다 한들 언젠가는 너무 작아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장 작은 호문쿨루스의 정자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며, 이는 곧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전성설을 믿는 순간, 우리는 언젠가는 인류가 멸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태생적으로부터 오류를 지니고 있던 전성설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한 개체 발생 과정이 알려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지만,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는 생식세포에 대한 과장된 미신과 전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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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발생 과정 정자는 난자와 함께 수정란을 만든다. 앞서 말했듯이 서로 다른 성이 만들어낸 생식세포들이 결합해 수정란을 만드는 경우, 유전물질의 양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각각의 생식세포들은 유전물질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는 감수분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정자 역시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고환(testis)의 정원세포로부터 감수 분열을 거쳐 원형의 정자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자세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자와는 모양도 다르고, 수정 능력도 없다. 정자가 돌진하는데 필요한 꼬리가 없는 것이다. 정자세포가 정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추기 위해서는 정자 성숙(Spermiogenesis) 과정을 더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고환에 존재하는 세르톨리 세포(sertolis cell)이다. 고환은 정원세포와 세르톨리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원세포가 장차 정자가 될 세포라면 세르톨리 세포는 정자가 정자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포이다. 감수분열을 거쳐 정원세포로부터 만들어진 정자세포는 세르톨리 세포의 철저한 지도ㆍ감독 하에 정자로 성숙하는 것이다.
세르톨리 세포의 도움을 받는 정자의 성숙은 먼저 정자세포 내부에 장차 첨체(acrosome)가 될 일종의 과립(granule)이 형성되어 정자세포의 한쪽 부분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첨체란 장차 정자가 난자에 도달했을 때,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막을 뚫기 위해 필요한 효소들이 든 일종의 주머니를 말한다. 첨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첨체가 위치한 곳이 자연스레 정자의 머리 부분이 되어 이를 기준으로 반대쪽에 정자의 꼬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정자가 성숙 과정을 거칠수록 꼬리는 점점 더 길어지고, 머리 앞 부분의 첨체는 더 농축되며, 동그란 모양이던 핵은 점차 길쭉해져 난자를 항해 헤엄쳐 가기 위한 최적의 몸체를 형성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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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자의 전자현미경사진
하지만 완전히 조립된 기계도 전력을 공급해야 제대로 기능하듯이, 성숙 과정을 모두 거친 정자라 할지라도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정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인 ‘운동성’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원세포로부터 만들어진 정자세포에 꼬리까지 붙여 정자로 변신시킨 정소는 이제 이를 부고환(epididymis)으로 넘겨 다음을 부탁한다. 정자는 꼬불꼬불한 관으로 구성된 부고환을 통과하며 운동성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정자의 특성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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