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8, 2011

접합 - 번식의 방법

1908년, 헨리 포드는 향후 그를 명실공히 '자동차 왕'의 반열에 올려놓을 모델을 출시했다. 검은색 사각형의 자동차, 모델 T였다. 모델 T는 당시로써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일례로 1914년에는 포드사의 모델 T가 26만대나 팔려나갔는데, 같은 해 미국 전체의 자동차 판매량이 54만대였다.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 두 대 중 한 대가 포드의 모델 T였던 것이다. 모델 T는 이처럼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모델 T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모델 T가 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라 할지라도 거리에서 보이는 자동차들이 온통 검은색의 모델 T로 점철되자 결국 사람들은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의 외면으로 결국 메가히트작이었던 모델 T는 1927년에 단종되었다.

1910년 형 포드 모델 T.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모델 T도 결국 1927년에 단종되었다.


똑 같은 것은 영원히 생존할 수 없다
시장에 나오는 수많은 제품 중 어떤 것이 인기를 끌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야심차게 내놓은 모델이 전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도 있고, 때로는 별다른 기대없이 내놓은 모델이 유행을 선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어떠한 인기 모델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처럼 변덕스러운 것은 없다. 시장의 요구는 늘 변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델은 곧 시장에서 퇴출된다. 아무리 전통이 오래되었든, 아무리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간에 상관없다. 제품과 시장의 관계는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생명체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도태된다. 아무리 번성했던 생물종이라도 해도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에게 예외는 없다. 그리하여 생명체들은 유전자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진화시켜왔다.

성(性)의 분화로 인한 유성 생식이 다양성의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라는 것에 많은 생물학자들이 동의한다. 번식의 효율성 문제에 있어서는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교되지 않는다. 무성생식은 짝을 만나기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쓸 필요도 없고, 자손을 낳는데 겨우 절반의 개체만을 이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거롭고 개체 낭비도 심한 유성생식을 많은 생명체들이 번식 전략으로 선택한 이유는 서로의 유전자를 섞는 과정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아직도 박테리아를 비롯한 많은 단세포생물들은 여전히 무성생식으로 번식함에도 불구하고, 수십억년 동안 지구라는 변화무쌍한 환경에 훌륭하게 적응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접합 - 미생물의 섹스
일반적으로 섹스라는 단어는 남녀 간의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19금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만 본다면 박테리아를 비롯한 단세포생물들은 섹스를 할 수 없다. 애초에 암수의 구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섹스를 목적론적으로 보아 유전자를 섞어 번식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이들 역시 섹스를 한다. 이들도 나름대로 유전자를 섞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미생물의 섹스가 다세포생물의 그 것과 다른 점은 성별이 고정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고, 섹스를 통해 유전자만 교환할 뿐 개체의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생물의 유전자 교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접합 (conjugation) 역시 미생물의 대표적인 유전자 교환법이다.


접합의 사례 (1) 대장균 
접합이란 두 개체의 미생물이 일시적으로 연결되어 유전물질을 직접 전달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의 일종인 대장균의 경우, F 인자(Fertility Factor)가 접합에 있어서 주요 요소가 된다. 대장균을 비롯한 박테리아들은 이분법으로 통해 어미와 똑같은 자손을 복제하여 번식한다. 하지만 모든 자손이 어미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복제 반복시의 실수나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예를 들어 자외선이나 방사선, 특정 화학물질들은 DNA에 변화를 일으킨다- 돌연변이가 종종 발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종종 F 인자를 지닌 세포들이 생겨날 수 있다. F 인자는 몇 개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유전자 소그룹으로, 다른 세포로 이동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F 인자를 가진 대장균을 F+ 대장균, F 인자가 없는 보통 대장균은 F- 대장균이라 하자. 대장균들은 이분법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주변 세포와 접합하는 통로를 만들어 일시적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이 때 접합 통로를 통해 F+ 대장균은 F 인자를 복제하여 F- 대장균으로 이동시킨다.

접합 중인 대장균

이 과정에서 종종 F 인자 자체 뿐 아니라, F 인자와 연합되어 있던 유전자의 일부도 복제되어 F- 대장균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F+ 대장균이 지닌 유전자가 F- 대장균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 때 F- 대장균은 F 인자와 유전자 일부를 넘겨받게 되어 이전과는 유전적으로 다른 대장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또한 F 인자를 주입받았기 때문에, 이제 이 대장균은 F+ 대장균이 되어 다른 F- 대장균에게 F 인자와 함께 자신이 지닌 유전자의 일부도 넘겨줄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대장균들은 F 인자와 함께 서로가 지닌 유전자들을 넘겨주며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장균의 접합은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유전자가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갑돌이가 어느 날 성형외과에서 연예인 모씨와 마주쳤다고 하자. 갑돌이는 이 소식을 전화로 친구인 갑순이에게 얘기해 줄 수 있다. 또한 이 소식을 들은 갑순이는 다시 친구인 을순이에게 얘기할 수 있고, 을순이는 또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직 소식을 듣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전달할 수 있고, 한 번 전달했다고 해서 다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소문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형외과에서 모씨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보태지거나 왜곡되어 ‘알고 보니 모씨가 성형중독’이었다거나 ‘성형외과가 아닌 산부인과였다’라는 이야기로 변질되기 일쑤다. 대장균의 접합으로 인한 F 인자 전달 역시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하나의 F+ 대장균에서 시작되더라도, 집단 내 F+대장균이 늘어나면서 F 인자의 전달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고 F 인자와 함께 각자가 지닌 유전자의 일부 역시 전달되어 하나의 F 인자는 다양한 유전자 조합들로 대장균 집단 속에 퍼져나가게 된다.


접합의 사례 (2) 짚신벌레 
짚신벌레의 접합

앞서 말한 대장균의 접합이 F+에서 F-로 넘어가는 다소 일방적인 섹스였다면, 짚신벌레의 접합은 매우 통합적이다. 연못이나 논 등의 민물에 사는 짚신벌레는 몸길이 약 170~290㎛의 단세포생물로 세포 내부에 대핵과 소핵이라 불리는 2개의 핵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보통의 경우, 짚신벌레는 단세포생물답게 이분법으로 번식하는데, 대핵이 둘로 나뉘어지고 소핵이 복제된 뒤 세포 가운데부터 세포질이 나뉘어지며 두 마리의 짚신벌레로 갈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서로 다른 짚신벌레 두 마리가 달라붙어 접합이 일어나기도 한다. 접합이 일어나면 두 마리의 짚신벌레 내부에서는 매우 독특한 변화가 일어난다. 양쪽의 짚신벌레가 가진 대핵은 분해되어 사라지는 반면, 소핵은 접합 부위로 이동해 서로 융합된다. 즉, 짚신벌레 A와 짚신벌레 B가 접합하면 이들의 대핵은 모두 사라지고 소핵 A와 소핵 B가 결합하여 소핵 AB가 만들어진다.

다시 이 소핵은 다시 4개로 분열하여 각각의 원래 있던 A와 B의 몸체로 두 개씩 돌아가는데, 이 두 개의 소핵 중 하나는 그대로 남고 나머지 하나는 여러번 복제하여 덩치를 불려 대핵이 된다. 이렇게 유전물질을 몽땅 뒤섞어 절반씩 나눠가진 짚신벌레는 이제 다시 두 개로 나뉘어 제갈길을 가게 된다. 겉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새로이 조합된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짚신벌레가 되어서 말이다.  


다양성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이다
2006년 명품 기업 버버리가 한 세기를 지속해왔던 체크무늬 패턴을 포기했다고 한다. 1888년 영국의 토마스 버버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흰색과 갈색, 남색의 체크무늬 패턴은 100여년이 넘는 동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였지만, 결국 그 역시도 세월의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소식은 버버리가 버버리 체크를 포기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제품을 내놓은 이후 오히려 버버리의 매출이 껑충 뛰었다는 것이었다. 일관성을 버리고 다양한 전략을 추구한 것이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이라 해도 끊임없이 리뉴얼되지 않으면 곧 도태되고 마는 시장의 법칙은 어쩌면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온 우리의 DNA 속에 숨어 있는 본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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