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8, 2011

출아법 - 번식의 방법

자고 일어나니 어깨에 조그만 혹이 돋아났다. 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갔다. 처음에는 그저 둥그스름했던 모양이 갸름하니 길어지더니 제법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다. 이젠 어깨에 달고 다니기엔 좀 무겁다 싶어지는 순간, 이젠 완전한 형태를 갖춘 혹은 어깨에서 뚝 떨어졌다. 혹이 바닥에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얼른 받아 안았다. "고마워요, 엄마" 혹이 말했다. 아니, 방금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나를 꼭 닮은 혹이었다.


싹을 낳는 방법, 출아법
어느 날, 어깨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아기가 자란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번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체 중에는 이처럼 성체의 몸의 일부에서 이를 꼭 닮은 작은 개체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종도 있다. 이런 번식 방법을 출아법(出芽法. budding)이라고 부른다. 싹(芽)을 낳는(出) 방법이란 말 그대로, 출아법으로 번식하는 생명체들은 모체의 몸 일부에서 작은 눈(bud)이 생긴 뒤 이것이 어느 정도 자라면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적 개체가 되는 방식이다. 짝이 없이도 혼자서도 번식이 가능한 무성생식이며, 따라서 어미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복제 생식이다.


효모, 출아법의 대표 주자
출아법으로 번식하는 생명체들은 균류의 일종인 효모와 히드라와 말미잘 같은 강장동물들이다. 그 중에서 효모는 출아법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효모는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단세포 생물은 지난 번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이분법으로 번식한다. 얼핏 보면 단세포 생물의 경우 이분법과 출아법은 엇비슷해 보인다. 무성생식법인데다가 동일한 유전적 개체가 하나에서 둘로 나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아법은 이분법과 분명히 구별된다.

효모는 흔히 세균이라고 불리는 박테리아와는 '급'이 다르다. 같은 단세포 생물이기는 하나 박테리아와는 달리 핵과 세포내 소기관을 지닌 진핵세포라는 뜻이다. 따라서 출아를 위해서는 핵이 분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효모는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세포 표면의 일부가 튀어나오면서 효모를 닮은(닮았다고 해봤자 가장 단순한 둥그런 모습이지만) 작은 돌기같은 것이 만들어져 점점 자라게 된다. 이 돌기가 점점 자라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할만큼 자라게 되면 모체 속에 있던 핵이 돌기 근처로 몸소 왕림한 뒤, 핵분열을 일으켜 두 개의 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하나는 모체에 남고 하나는 새로 만들어진 돌기 속으로 들어간다.

촐아법으로 번식하는 생물 효모. 출아 중인 효모와 출아흔이 보인다.

핵을 장착(?)하게 된 돌기는 하나의 개체로 이제 본격적으로 독립 생활을 준비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모체와 돌기 사이에 키틴질로 구성된 격벽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둘 사이가 구별되기 시작한다. 키틴질 격벽이 완성되면 지금까지는 모체에 달린 돌기에 불과했던 존재는 완전하고 새로운 개체가 되어 독립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분열 뒤에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박테리아와는 달리 이분법을 하는 효모의 경우, 분명한 자국이 남는다. 즉, 출아 이후에는 모세포에는 출아흔(出芽痕, bud scar), 딸세포에는 출생흔(出生痕, birth scar)라는 흔적이 남는다.  보통 한 번 출아된 지점에서는 다시 출아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된 효모일수록 출아흔이 많으며, 출아흔이 많은 효모일수록 더 많은 자식을 키워낸 ‘다산의 여왕’인 셈이다.


다세포성 생물의 출아
출아 중인 히드라.

‘신들의 왕’ 제우스와 인간 알크메네 사이에 태어난 헤라클레스는 살인을 저지른 죄로 티린스의 왕 에우리테우스 밑에서 12가지 과업을 완수하는 벌을 받게 된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다. 헤라클레스에게 맡겨진 12가지 과업 중 하나도 쉬운 것은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레르나 호수에 사는 괴물 히드라를 퇴치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괴물 히드라는 하나의 머리를 베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새로운 머리가 생겨나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의 피를 받은 영웅이라 해도 독을 뿜어내는 날카로운 이를 가진 히드라의 머리 여럿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히드라는 머리를 베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베인 자리에서 새로운 머리가 돋아나는 괴물로 그려진다. 어째서 몸 크기 겨우 5~15mm 정도에 불과한 히드라가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엄청난 출세(?)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작은 히드라의 번식과 재생 능력은 신화 속 그것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연못이나 늪 등 물 속에 사는 히드라는 강장동물의 일종이다. 정소와 난소를 한몸에 모두 갖는 자웅동체인 히드라는 생식세포를 만들어 유성생식을 하기도 하지만, 영양 상태가 좋은 경우에는 생식세포의 결합 없이 그냥 몸통 일부에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출아법으로 번식하기도 한다. 히드라는 몸의 1/200만 남아 있어도 전체를 재생할 정도로 재생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번식이 가능하다. 히드라 외에도 말미잘 등의 강장동물의 경우 출아법으로 번식하곤 하는데, 효모와 달리 이들 다세포동물들은 출아법 외에도 생식세포를 이용한 유성생식도 가능하다.


잎에서 새끼를 낳는 만손초
출아가 가능한 히드라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물들은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한다. 하지만 식물들은 대개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모두 이용하여 번식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만손초는 잎에서 자손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잘 알려진 식물이다.

출아법을 통해 번식하는 것은 어미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기에 유전적 다양성을 통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면에서는 다소 불리하다. 하지만 짝짓기 등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하나의 어미에서 다수의 자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개체수를 늘리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인지 히드라의 경우에도 먹이가 풍부하고 환경이 온화한 경우에는 유성생식 대신 출아를 통해 번식한다. 그래서인지 만손초 이파리 가장자리를 따라 조로록 매달린 앙증맞은 작은 만손초들은 존재하고 복제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열망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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